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지난 2012년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으며 일약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섰다. 당시 필자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싸이가 매우 자랑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우려도 있었다.


이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 ‘그 퍼포먼스’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한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미군의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이 있었다. 흔히 ‘효순·미선이 사망 사고’로 불리며 전 국민이 안타까움에 더해 미군과 미국 정부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미국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며 촛불을 든 반미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 말 싸이가 한 음악 축제에 출연해 가수 고 신해철과 노래를 부르면서, 장갑차 모형을 집어던지고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이 있다. 당시 싸이는 빨간 옷을 입고 황금색으로 얼굴을 칠하는 등 기괴한 모습을 했고, 이는 사고를 일으킨 미군 즉 백인과 미국을 겨냥한 퍼포먼스와 의상이었다.

특히 싸이는 2004년에도 반미집회에 참석해 “이라크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미군과 그 가족을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이자”라는 내용의 랩을 부르기도 했다.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통쾌할지는 몰라도 ‘노골적 반미주의’를 실천한 것이었다.

아무리 미국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이며 당시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상당하더라도, 자국 군대와 군인을 향해 몽둥이로 깨부수거나 가족까지 천천히 죽이자는 섬뜩한 노래를 불렀던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과연 싸이가 자신의 과거 언행을 어떻게 해명할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2012년 당시 미국 한 매체에서 과거 싸이의 반미 언행에 대해 소개한 오피니언 기사. 사진=MEDIA ITE <‘Gangnam Style’ Singer PSY’s Vitriolic Anti-American Past Revealed, Outrage Ensues(강남스타일 가수 싸이의 독설가득한 반미 과거 폭로, 분노 속출)> 기사 캡쳐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그의 과거 퍼포먼스가 미국 언론과 SNS 등을 타고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역시나 미국 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싸이는 “선동적인, 부적절한 언어를 썼던 것에 대해 깊이 후회(regret)하고 있다. 내가 쓴 단어들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사과 드린다”고 소속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장갑차를 때려 부쉈던 행동에 대해서는 딱히 후회나 사과를 표하지는 않았다. 그때 필자는 싸이가 ‘참으로 처세에 능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뼛속까지 반미와 좌파적 성향을 간직하면서도, 정권에 따라 그리고 인기와 돈이 되는 방향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척’을 완벽히 해나갈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 이후 싸이의 행보는 개인적 억측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맞아 나갔다.

싸이는 박근혜 정권 때는 마치 보수 인사처럼 행동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 특별공연으로 ‘강남스타일’을 불렀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최고의 가수만이 할 수 있는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다.

당연히 싸이를 비롯해 그가 소속해 있던 YG엔터테인먼트는 정부와의 유착설까지 제기될 정도로 박근혜 정권 시절 승승장구했다.

싸이가 지난 2013년 2월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축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데일리


그랬던 그가 문재인 정권으로 바뀌자 2017년 5월, 8집 앨범 발매 기자 간담회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너무도 멋지고 활기차고 서로 소통이 잘 되고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일들로 잃었던 웃음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주제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탁드린다”며 문재인이 절로 미소가 나올 만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면서 다음 해인 2018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싸이는 특별 축하공연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함박웃음을 보내며 악수를 나눴고, 앞서 2017년 11월에는 영부인이었던 김정숙 씨가 동남아 순방 중 한복을 입고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품을 추며 그 유명한 ‘김정숙 말춤 사진’을 만들어 냈다.

문재인 정권 당시 YG엔터테인먼트는 버닝썬 게이트부터 시작해 여러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싸이는 이처럼 잘 살아남았다.

김정숙 씨가 지난 2017년 11월 14일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다. 사진=KTV국민방송 캡쳐

물론 싸이도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지난 2020년에는 <디스패치>의 보도를 통해 신천지의 전신인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의 교주가 싸이의 장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신천지가 코로나19를 급속히 확산시켰다는 문제로 주목받으면서 싸이에게도 불똥이 튄 것이다.

또 2021년 초에는 싸이가 한남동 고급 빌라에 살면서 아래층에 심각한 층간소음의 피해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당시 피해 당사자가 제보를 해왔고, 그는 싸이의 두 딸이 밤낮없이 거실과 안방, 복도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소음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싸이 측에 항의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소음이 개선되지 않았고, 심지어 이 일로 경찰에 수차례 신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피해자는 싸이의 아내로부터 “저분 경찰을 너무 자주 부른다”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폭로했다.

보통의 연예인이 이런 구설수에 올랐다면 향후 연예 활동은 물론이고 명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터이다. 절정의 인기에 있는 만큼, 사소한 논란에도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가지 않았고, 싸이는 살아남아 건재함을 과시했다. 윤석열 정부 때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싸이를 대표하는 최고 이벤트가 돼버린 ‘흠뻑쇼’를 재개했고, 지나친 물 사용과 여러 특혜 논란에도 이 이벤트를 지속하면서 역시 이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가수 싸이가 지난 2023년 6월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싸이 흠뻑쇼 SUMMER SWAG 2023’에서 1일차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데일리


이제 이재명 정부다. 아니나 다를까 완벽한 처세를 보여줬다. 그는 8월 15일 개최 예정인 ‘제80주년 광복절 전야제’에 무려 ‘노 개런티’로 참석해 공연하기로 했다.

심지어 싸이는 이 행사를 기획한 탁현민 국회의장 행사기획 자문관과의 전화에서 “형이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안 할 수가 없지”라며 노 개런티 공연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날의 행사에는 보수정권 전직 대통령과 국민의힘 인사 등은 어느 누구도 참석하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을 횡령한 윤미향을 그리고 입시 비리로 국민들을 분노로 몰아넣었던 조국을 사면하면서 이들과 함께 즐기는 행사에 참석하는 게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싸이는 과연 ‘탁현민 형’의 부탁을 들어주기 전에 이날 행사에 왜 반대 진영에서 대거 불참하는지 그리고 국민들이 왜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에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라고 생각해 봤을까.

특히 과연 박근혜·윤석열 정부 때 개런티를 받지도 않고 국가 행사에 나갔던 적이 있었는가. 역시나 어느 정권에도 인기와 돈이 된다면 그 상황에 맞게 처세하는 데 능하지만, 뼛속부터 좌파적 성향을 감출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