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교수 ㅣ 영국 보수당이 내놓은 ‘Renewal 2030’ 플랜과 케미 베이든옥 당수의 보고서는 단순한 정책 문건이 아니라, 서구 정치의 구조적 병리를 드러내는 정치 선언에 가깝다.

심규진 교수


보고서의 핵심 진단은 ‘관료 계급(bureaucratic class)’의 부상이다. 공무원, 준정부기관, 대학 행정가, NGO, 법률가, 인사·컴플라이언스 담당자, 친환경 운동가 등 규제와 통제를 주도하는 사무·관리 집단이 사회 전반에서 비대한 힘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평등·다양성·환경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과잉 규제와 위험 회피주의로 경제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전통적 중산층과 일반 시민을 점점 주변부로 몰아낸다.

보고서는 또, 이 관료 계급이 주도하는 좌파적 담론이 정체성 정치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한한 피해자성’이라는 프레임이 사회 전 영역에 덧씌워지면서, 젊은 세대의 보수에 대한 거부감과 사회적 연대의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G7 국가들의 1인당 경제성장률은 2.7%에서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케미 베이든옥은 그 원인을 관료 계급의 규제 확대, 생산성 저하, 공공 부문의 비대화에서 찾는다.

이에 따라 보수당은 규제를 완화하고, 전통적 시민 다수의 이해를 대변하는 실용적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국민 중심’과 ‘좌파·관료 질서의 해체’를 동시에 내걸고, 2030년 집권을 향한 정치적 재건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임건순 작가가 말한 ‘한국식 중산층 독재’와 ‘PC주의’ 비판, 이른바 ‘해줘 내놔 담론’과 구조가 거의 같다.

한국에서도 검찰, 경찰, 교사,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 관료적 중산층이 사회 의제와 정책 방향을 주도하며, 때로는 대중의 현실적 필요보다 자신들의 직역 이해와 도덕적 우월감을 우선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보고서는 결국 묻는다. 누가, 어떤 가치로, 관료적 중산층의 독점을 깨뜨릴 것인가. 이 질문은 한국 보수 정치에도 똑같이 던져질 수밖에 없다.

대중과의 연결을 복원하고, 규제와 통제보다 기회와 성장을 우선하는 체질 개선 없이는, 영국 보수당이 직면한 위기가 곧 우리의 위기가 될 것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