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굴욕과 치욕 그리고 능욕, 그 어떠한 말로도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분을 전부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2025년 7월 30일 이재명 정부의 미국과의 무역 협상 결과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이날 아침, 한국이 미국과의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다는 소식이 속보로 나왔을 때, 그나마 일본 및 EU 등 다른 국가와의 균형을 맞췄다며 필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도했다.
그런데 각 언론사별 기사 제목은 ‘25%→15%’만을 부각했다. 이 수치에 집중한 사람들은 “이재명이 성공했다” “역시 이재명” “그나마 선방했다” 등 호평 일색의 코멘트를 남겼다.
이들 언론사들이 ‘25%→15%’로 국민들의 눈을 속이는 건 오래 가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상세한 협상 내용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게시물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 원)를 투자금으로 제공한다(The Deal is that South Korea will give to the United States $350 Billion Dollars for investments)”며 “추가로 한국은 1000억 달러(약 139조 원)의 미국산 LNG, 또는 다른 에너지 제품을 구매한다(Additionally, South Korea will purchase $100 Billion Dollars of LNG, or other Energy products)”며 계약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상호관세율이 15%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글의 말미에 간략히 언급했을 뿐이다. 우리 언론의 보도 내용과 참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15%를 받고, 4500억 달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우리 돈으로 무려 625조 원이 넘는 가히 천문학적 수준의 금액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정확히 얼마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우리 정부는 과거 IMF 이후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항상 외환보유고를 여유롭게 관리해 왔다.
그래서 지난 5월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000억 달러다. 이 정도면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꽤 안정적인 수치지만, 4500억 달러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심지어 이 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는 전액 현금이 아닌 국채 등 소위 ‘묶여 둔 돈’이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투자금을 마련하기에 우리의 외환보유고로서는 500억 달러 이상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무역 협상을 체결한 주요 국가들의 조건과 비교해 보자. 참고로 우리 정부는 일본의 협상 결과를 기준으로 적어도 이들과 유사한 수준의 조건을 맞추는 데 신경 썼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EU 모두 상호관세율 15%를 확정했다. 그 반대급부로 일본은 5500억 달러(764조 원), EU 27개국은 6000억 달러(833조 원)을 미국에 투자하도록 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1조 2307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약 3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4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싶어도 돈이 부족한 반면, 일본은 5500억 달러를 투자하더라도 외환보유고가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명목 GDP의 규모도 일본이 약 4조 260억 달러, 한국은 1조 8700억 달러다. GDP 대비로 따져보면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는 13.6%, 한국은 18.7%에 달한다고 한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일본과 비슷한 수준은커녕 매우 불리한 협상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협상 직후 열린 원내대표 회의에서 이번 관세협상에 대해 “성공적으로 타결됐다”고 자찬하며 “역시 이재명 정부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옳았다”고 평가했다.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어라. 어떻게 저 숫자를 보고 이번 협상이 성공적이며, 국익 중심이고 실용외교라고 하는가. 그동안 내란 선동으로 재미 좀 본 탓에 이제 국민들을 대놓고 개돼지로 보는 것인가.
당신들 돈으로 저 4500억 달러를 마련하는가. 아니다. 다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에서 짜낸 세금이다. 사실상 자기들의 외교 실패를 국민들 부담으로 떠넘기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수가 부족하다면서 국민들에 15만 원씩 뿌리더니, 세금을 자신들의 쌈짓돈 정도로 착각하는 것인가.
대통령실은 부랴부랴 투자 금액 중 3500억 달러에 대한 해명을 내놨다. 그런데 그 해명마저 의문을 증폭시킨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7월 31일 오후 “1500억달러는 펀드고, 2000억달러는 그야말로 보증, 대출 같은 한도 개념”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도 그리고 백악관 대변인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 누구도 3500억 달러가 펀드나 대출이라고 밝힌 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명백히 “South Korea will give to the United States $350 Billion Dollars”라며 “주다”를 의미하는 “giv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납득하기 힘든 해명을 늘어놓고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 상대 국가와의 무역 협상 결과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전 세계인들이 보는 공간에 과장해 적어놨다는 것인가.
심지어 이번 협상은 정식 문서에 사인한 게 아니기에, 엄밀히 말해 구두 합의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을 2주 내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사이 미국 측은 물밑에서 우리나라에 더 큰 요구를 해올지도 모른다.
앞서 ‘경제 사령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재무장관 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 1시간 30분 전 이메일로 일방적 연기 통보를 받거나, 우리 협상단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났다가 사실상 우리 정부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미 정부 관계자들이 이를 경험한 만큼, 기존 협상안보다 더 큰 걸 바라면 바랐지 이재명 정부의 사정을 최대한 봐줄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들의 부담이 지금 우려하는 수준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협상 과정 내내 언론 등에 미국이나 트럼프는 제대로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한 채, SPC나 포스코이앤씨 등 민간기업에나 큰소리치고 다녔던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소식이 들려오자 안도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제가 이빨이 흔들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가만히 있으니까 진짜 가마니인 줄 안다”며 “말을 하면 악영향을 주니까 말을 안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엄중한 상황에 이런 농담 따먹기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는 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명비어천가’를 부르짖는 언론들은 이걸 ‘전략적 침묵’으로 포장해 대통령이 협상단을 조용히 후방에서 지원했다고 기사를 써댔다.
혹시 그 전략적 침묵이라는 말의 전략이 ‘대통령 자신은 빠져있다가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자기 공(功),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협상단의 책임으로 하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번 관세협상으로 인해 국민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정도가 심상치 않다. 그 이유는 단지 이번 협상 결과를 실패라고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성공과 선방으로 자기 면피에 급급한 저들의 행태 때문이다.
‘매국’ 또는 ‘매국노’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문제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그런데 김민석 국무총리는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지난 5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이 대미 관세협상이 미국 측에 유리하도록 이끌었다며 이들을 향해 ‘매국노팀’이라고 비하했다.
이번 결과를 보면 미국 측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낳은 건 일본도 EU도 아닌 대한민국 정부, 바로 이재명 정부다. 김민석 총리의 말대로라면 이번 정부 협상단과 이재명 대통령이 매국노팀이라는 것인가.
특히 매국이 따로 매국이 아니다. 다른 나라와 굴욕적 외교 협상 결과를 만들어 놓고, 이를 성공이나 선방으로 포장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시도가 곧 매국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 굴욕적 협상을 그리고 당신들이 그 과정에서 보여줬던 모든 것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 논평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2025년 8월 1일 자 <인싸it>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umn1EOcmk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