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지난 2019년 7월 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부랴부랴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이로부터 일주일 전,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에 대한 한국의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연히 삼성전자로서는 일본 내 반도체 고객사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 위기의식에 총수가 직접 나서 일본 내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설득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 일본 정부는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 의해 일본 제국주의 당시 일에 관한 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한 만큼, 정치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고(故)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시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반발했지만, 반일(反日)·친북(親北) 기조의 문재인 정부는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대한(對韓) 수출품에 대한 제재 등을 결정했고, 우리나라도 좌파 진영의 주도 아래 “노재팬(NO JAPAN)”을 외치며 일본 수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쳤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정치인들이 외교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국민 간의 갈등 및 분열 조장 그리고 기업에 대한 피해로 번지게 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이재용 회장도 스스로 나섰던 것이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인들로 구성된 경제 단체들이 양국의 중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우리는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속 빈 강정과 같은 자존심만 앞세워 국민 선동에 혈안이었고, 자신들의 외교 실패로 인한 기업과 국민 피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과의 갈등 해소는 이재용 회장과 같은 기업인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정권이 2번이나 바뀌어 다시 좌파 정부가 들어섰고, 6년 만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7월 30일 미국 정부와의 무역 협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날의 협상 결과가 최근 50년 사이 대한민국의 외교 협상 가운데, 가장 굴욕적이고 국익에 반(反)하며, 실패한 사례라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과 동시에 미국에 내준 것 그리고 앞서 이뤄진 일본 및 EU와 미국과의 협상 결과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충격이 큰 건 역시 자동차 분야의 협상 결과다. 이번 협상으로 자동차 제품에 대한 대미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과 EU도 자동차 제품 관세가 15%로 맞춰졌다.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제품을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었는데 15%로, 반면 일본과 EU는 기존에 2.5%의 관세를 부과받고 있었는데 15%로 인상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2.5%라는 이점이 사라진 것으로, 실질적으로 17.5%의 관세 부과와 다름없는 것이다.

필자는 그나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었기에 최악을 피해 15%로 맞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역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 정부 인사들은 미국 측에 질질 끌려다니는 상황이 이어졌고, 협상 막판에 가서야 정의선 회장, 이재용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힘을 보탰다.

특히 지난 3월 정의선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현대차그룹이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미 미국 관세 문제에 의기 의식을 느끼고 경영인으로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현안 해결에 나선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 회장에 “원하는 문제가 있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 정도로 신뢰 관계에 있고, 이번에 정 회장이 직접 워싱턴에 얼굴을 비춰 이곳저곳에 관세율 인하의 목소리를 낸 만큼, 그나마 일본·EU와 같은 관세율을 맞출 수 있었다고 본다.

결국 이번에도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외교적 문제를 기업인들이 솔선해 ‘그나마 최악을 피하는 수준’으로 해결한 것이다.

이성과 상식이 있다면 이번 협상에서 정의선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의 공을 부정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무역 협상 결과를 두고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의 값진 성과”라고 자찬했다. 이들에게 기업인들의 노력과 활약은 역시 이 대통령의 뒷전이었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과정 내내 뒤로 빠져 SPC와 포스코이앤씨 등 기업의 산업재해를 두고 큰소리나 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떤 기여를 했고 실용 외교의 성과라는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 대해 실패한 그리고 굴욕적 협상이라는 여론이 상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걸 값진 성과라고 표현하는가.

2019년 7월 이재용 회장의 일본 출장이나 이번에 정의선 회장의 워싱턴 행(行)이나, 좌파 정부는 자기들이 해결해야 할 일을 기업인의 힘을 빌리면서 공은 스스로에 돌리려는 하는 행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파 정권은 자신들이 일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에 도움을 준 기업인의 공로를 결코 후 순위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배려와 혜택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금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그룹에 고마움과 격려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좌파 정권은 오히려 목을 조르는 상황이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50%에 달하는 국내 자동차 기업은 이번 관세 협상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제 미국에서 현대차·기아 제품은 일본의 도요타와 독일, 영국산 BMW, 독일 폭스바겐 등과 가격 경쟁력에서의 메리트를 잃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 투자를 줄이는 대신 미국 현지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이니 법인세 인상이니 ‘반기업 악법’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의선 회장에게는 탈(脫) 한국에 미국 투자 규모를 늘릴 명문만 쌓아주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현대차는 살아남을지는 몰라도 완성차에 부품과 기술력, 인력을 제공하는 국내 중소 하청 업체에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걸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당신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 논평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2025년 8월 1일 자 <인싸it>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umn1EOcmk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