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기자를 시작하게 된 지 두 달째. 절실히 느끼는 한 가지는 ‘경험은 결코 무시 못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취재 아이템을 발굴하려고 해도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기사를 쓰더라도 1년이라도 더 경험을 쌓은 선배 기자들의 취재력과 기사 작성 속도, 완성도를 따라가질 못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단정하고 포기하자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이대로 단념하면 스스로가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기분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른 지원자를 떨어뜨려 가며 나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그리고 성실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지금 선배들의 업무 능력에 도달할 수 있을 테고, 정규직 전환에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일을 즐기며 후배들로부터 인정받는 선배가 되리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건 경쟁이다. 정확히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성공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도태되고 실패하며, 이는 성공한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도 필자는 나태해지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항상 머릿속에 새기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소식은 필자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의무’ 조항을 신설한다는 것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규직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불공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특히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체계를 두는 연공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업무의 성격과 중요도, 난도에 따라 임금을 산정한 직무급제를 반영하겠다고 한다. 노조 출신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직무급제 도입을 찬성하는 취지로 발언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뭔가 이름과 취지는 개념 있고 정의로우며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 현장에 경쟁력 저하와 구성원 간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 이 개정 법안은 ‘계약직도 정규직만큼의 업무를 하는 데 연봉 등 처우에서 차별받는다’ 그리고 ‘실질적 업무 성과는 저 연차나 계약직 근로자도 충분히 내는 것 같은데,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처우에서 유리하다’라는 문제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굳이 정규직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리고 ‘한 회사에서 근속한 보람 따위는 없어지겠구나’라고.

사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는 저 연차에 아직은 계약직인 필자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유리한 건 아니다. 계약직과 정규직이 동일 업무 수준에서 같은 임금을 받는다면, 점차 전체 임금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고용주나 한정된 파이 안에서 회사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고 효율적 인건비 운용을 목표로 하는 이상, 낮은 쪽으로 맞춰주려 하지 높은 쪽으로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계약직의 임금을 정규직에 맞추는 게 아닌 정규직 임금을 계약직에 맞추려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결국 이로써 임금의 하향 평균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다. 계약직으로도 대우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어느 누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 때 아등바등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학점과 스펙 잘 쌓아서 치열한 입사 시험을 치르려 할까.

무엇보다 이 개정 법안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게 과연 누구의 일이 더 객관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고,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직무급제가 현재 다른 국가에서도 시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이러한 기준이 제대로 정립돼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만약 노선이 같고 배차시간도 바로 앞뒤로 지정된 버스를 운전하는 ‘정규직 운전사’와 ‘계약직 운전사’라면 동일노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노선은 같아도 승객이 몰리는 퇴근 시간대의 버스를 몰게 된 ‘계약직 운전사’와 역시 승객이 많고 이른 시간에 출근해 고단한 출근 시간대 버스를 몰게 된 ‘정규직 운전사’ 중 누구의 업무 강도가 더 높아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인가. 서로 자신의 업무가 더 힘들었으니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인싸잇>과 같은 언론사를 예로 들자면, 기사 하나가 나오기까지 ‘취재와 기사 작성→편집 및 데스킹→최종 컨펌 및 전송’의 업무 절차를 거치는데, 취재와 기사 작성은 대부분이 필자와 같은 평기자들이 한다. 편집 및 데스킹은 고연차의 국장들이 한다. 최종 컨펌 및 전송은 발행인을 비롯해 국장이 정한다.

과연 이 3개의 업무 과정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하며 강도가 높을까. 평기자 입장에서 기사의 내용을 더 풍성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법적 문제가 없이 편집하는 국장의 업무가 더 중요해보일 수 있고, 국장은 기사에 대해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발행인의 역할이 더 중요한 업무라고 볼 수 있다. 또 국장도 과거 평기자를 해 봤을 것이니 새로운 걸 발굴하고 기사를 쓰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고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과연 어떤 업무가 더 돈을 많이 받아야 마땅한 노동이고, 적게 받아야 하는 노동인지 제대로 파악이 서지 않는다. 심각한 건 아직 이에 대해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관련 법안에 ‘동일노동 기준을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용자가 이를 정하는데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남자들이 군대 있을 때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내가 있었던 군부대가 가장 힘들었다’는 말처럼 업무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고 급여를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은가.

과연 근로자 대표가 각자 자기 업무가 가장 고단하고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를 분란 없이 제대로 종합해 사용자에 제시할 수 있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명확히 해결하지 않은 채 법제화부터 하겠다고 털컥 발표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연공제 폐지를 통한 직무급제 도입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험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쉴 틈 없이 일하는 일부 저 연차 직원들의 눈에 고 연차 선배가 놀면서 쉬엄쉬엄 일하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그들은 이미 업무에 숙련돼 수월하고 신속히 일 처리하고 나머지 여유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자신의 업무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연차와 관계없이 조직에서 배제돼야 하겠지만, 이런 극단적 경우가 아닌 이상 다 자신의 연차와 능력에 맞게 일하고 또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그 부담과 경험 그리고 과거의 공로를 배제하고 기준도 애매모호한 직무급제로 전환하겠다는데 어느 근로자가 일에 보람을 느끼고 근로자 간 갈등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다는 말인가.

만약 저 연차가 고 연차 선배보다 더 좋은 성과를 냈다면, 현행 성과급제로 그때그때 차등 지급을 하면 되는 것이지 이걸 동일임금으로 무조건 맞추거나 차별하라고 하면 고 연차 입장에서는 당연히 역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필자조차 우려가 상당한 동일임금 동일노동. 그래, 어디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실질적으로 이 법을 통해 가장 불리해질 수 있는 게 ‘정년 연장은 물론이고 연봉 인상에 자녀들 학비까지 회사에서 지원해달라고 투쟁하는 현 40~50세대 정규직 노조 근로자들’이 아닌가.

당장 자신들과 계약직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처우를 무조건 동일하게 한다면 이들이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용주는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로 맞설 것이고, 자신들의 처우는 현재보다 못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에 노사갈등은 물론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저 연차와 고 연차 노동자 간의 갈등도 지금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그리고 집권당의 주 지지층인 만큼 가슴을 열고 이 법을 지지해줄지도 모른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저 경쟁해 살아남고 싶다. 경쟁을 통해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그동안의 언젠가는 과거의 성과를 반영한 연차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며 위를 받쳐주고 아래를 이끌어주는 업무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