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내 생애, 아니 대한민국 건국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정상회담을 보고야 말았다. 2025년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이번 회담은 이미 시작 전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동맹국인 한국 정상의 방문임에도 이 대통령 등이 도착한 앤드루스 공항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고사하고 애비 존스 국무부 부의전장이 나와 가장 먼저 악수를 청했다.
의전장도 아닌, 겨우 부의전장이 한 나라의 정상을 맞이하는 것도 모자라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이날 이 대통령을 맞이 한 건 애비 존스 부의전장과 조슈아 킴 대령 그리고 조현 외교부 장관, 이준호 주미대사 대리 내외 등이었다.
아무리 이번 일정이 국빈방문(State Visit)이 아닌 공식 실무방문(Official Working Visit)으로 의전 기준이 낮더라도, 동맹국 정상의 첫 방미를 맞이하는 의전과 드레스코드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21년 5월 공식 실무방문을 위한 방미 일정 때에도 미국 측에서는 로버츠 의전장과 89항공지원 전대장 등이 마중했다. 물론 선글라스 따위는 끼지 않은 채 말이다.
이 대통령에 제공한 숙소도 논란이 됐다. 각국의 대통령과 국왕, 총리 등 정상이 방문한다면, 미국 정부는 백악관 인근의 공식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를 제공한다.
물론 공식 실무방문의 경우 정부가 블레어하우스가 아닌 재량껏 숙소를 마련해주지만, 보안과 경호 등을 위해 블레어하우스에 묵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블레어하우스를 현재 수리 중이라는 이유로 이 대통령 등은 인근 호텔에서 숙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미국 정부는 동맹국의 정상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원래대로라면 우리 정부 차원에서 미국 측에 항의하거나 유감이라도 표해야 옳았다.
그런데 정상회담 개최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폭탄 발언을 내놨다.
그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WHAT IS GOING ON IN SOUTH KOREA? Seems like a Purge or Revolution)”라며 “우리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고, 한국과 함께 할 일이 없다(We can’t have that and do business there)”라고 적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 SNS 글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난 며칠간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에 대해 아주 심한 급습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우리 군사 기지에 들어가서 원래 접근해서는 안 될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그런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는 외교적으로 엄청난 결례다. 트럼프 행정부 1기와 현재 2기를 통틀어서 정상회담 시작을 불과 3시간 앞두고, 상대국을 향해 이런 식의 공격적이고 당황스러운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던가.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교회 급습이나 숙청 또는 혁명에 관한 일이 사실인지 궁금했다면, SNS가 아닌 우리 정부 측 인사에 직접 조용히 물어보고 확인을 하는 게 예의이자 상식이 아닌가. 물론 이 역시 트럼프식 협상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도저히 현재의 한국 정부와 대통령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언행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가를 대표해 그곳에 간 것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강한 항의에 사과를 요구하는 건 물론이고, 이마저 무시한다면 박차고 나와 그냥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 인사들은 트럼프 SNS 글에 적잖게 당황했고, 이를 부랴부랴 수습하려 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수지 와일스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핫라인을 통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보고해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결국 항의와 사과는커녕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언행이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회담은 시작됐고, 어깨와 허리를 낮추고 여유로운 표정의 트럼프 대통령에 앞에 이재명 대통령은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일관했다.
이 대통령은 마치 아첨꾼을 연상시키듯 다음과 같이 트럼프 대통령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이어갔다.
“세계 지도자 중 전 세계 평화 문제에 트럼프 대통령님처럼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실제 성과를 낸 건 처음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곳에서의 전쟁들이 트럼프 대통령님의 역할로 휴전하고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북한에 트럼프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도 칠 수 있게 해주시고 세계사적인 평화의 메이커 역할을 꼭 해주시길 기대한다.”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고, 그 과정에 대한민국도 함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아첨성 코멘트가 쉴새 없이 터져 나오자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교회와 오산 미군 기지 압수수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은 친위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로,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는 국회가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서 사실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낸 답은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 교회 압수수색과 같은 루머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이 대통령이 우려했을 법한 트럼프의 돌발 언행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두고 친위쿠데타라고 단정한 것부터 허위에 가까웠다. 특히 한국 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내란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며 연일 떠들어 대며 특검을 부채질하는데,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혼란이 극복됐다고 말하는 이중적 잣대를 보이는 것에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 국민들은 상대국의 결례에도 불구하고 항의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아주 예의 바르고 공손한 태도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꼴을 봐야만 했다.
이를 통해 얻어 낸 게 트럼프의 미소와 악수,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 고려 그리고 서명식에서 의자를 빼주는 정도의 대접 등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칭송외교’라고 지적했고, AP통신도 ‘트럼프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초기 경고가 아첨 후 따뜻한 환영으로 바뀌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물론 칭송과 아첨에서 끝났으면 다행이었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새롭게 얻어 낸 건 없었다.
‘성과’라고 표현하려면 지난달 30일 이뤄진 1차 관세 협상과 비교했을 때 우리 쪽에 유리하도록 관세율을 낮추거나 고관세 부과 품목을 축소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현상 유지’였다.
1차 협상에서 맺은 그대로를 그저 유지하는 것에 불과한데, 도대체 이걸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때보다 더 많은 걸 얻었다. 이날 대한항공은 7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발표했고, 이미 미국 내 2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현대차는 같은 날 미국 내 제철과 자동차 그리고 로봇 등 분야에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임대차 계약(lease)을 없애고, 우리가 거대한 군 기지를 두고 있는 땅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계획을 드러냈다.
결국 이것을 우리 정부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관세부터 시작해 그동안 맺은 협정을 언제든지 비틀 수 있다는 사실상 겁박에 가까운 요구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1차 관세 협상 때보다 더 많은 걸 한국으로부터 얻어냈고, 또 얻어내려 하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이 사용한 만년필도 “좋은 펜(nice pen)”이라고 말하며 즉석에서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언론 다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은 참 똑똑하다. 매우 전략적인 언어의 선택으로 협상가다운 기지를 발휘했다” 그리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번 회담의 성과는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갈 것”, 김영배 의원은 “100점 만점의 첫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저는 120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체 1차 협상 때보다 우리 정부가 새롭게 얻어낸 게 무엇이 있길래 이처럼 ‘협상가다운 기지’와 ‘120점’ 등으로 칭송한단 말인가.
마치 국방부 장관 앞에 앉은 이등병처럼 굴욕과 아첨, 저자세의 태도로 일관하며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대기업들 투자금 털리고 이제는 우리 영토까지 헌납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겨우 현상 유지한 걸 성과라고 떠드는 것인가.
국내에서는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다 잡아들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때릴 기세로 센 척을 하면서, 트럼프 앞에서는 아주 공손하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고 간과 쓸개까지 다 퍼주는 듯 전형적 ‘강약약강’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가.
도저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자들에게 나라의 정치와 외교를 맡기고 있으니, 또 명비어천가에 눈이 먼 언론이 판을 치고 있으니, ‘대한민국 수익률’을 보는 트럼프의 흐뭇한 미소는 임기 내내 끊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