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한미 관세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긴장을 졸였던 7월 24일,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다. 7월 25일(미국 현지시간)로 예정돼 있던 ‘2+2 협상 회담’ 일정에 대한 연기를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출국 1시간 전 인천국제공항 대기실에서 회담 취소 소식을 접하고 협상팀 10여 명과 정부서울청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미국 측 고위급 실무진과의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20일 출국한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나흘 동안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을 한 차례도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했다.
당시 위성락 실장은 루비오 장관과의 회담이 불발된 계기에 대해 “면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루비오 장관을 긴급 호출했다”며 “루비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회의가 길어져 참석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루비오 장관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호출로 회담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세 차례나 사과받았고, 유선 협의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사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협상의 키는 미국 측이 쥐고 있고 우리 정부는 끌려다니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미리 약속한 회담을 코앞에 두고 상대국의 장관급 고위 인사들을 헛걸음하게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외교적 결례이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 의문을 해소할 만한 단서가 최근 드러났다.
미국 정가에서 ‘트럼프의 멘토’라고도 불리는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한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The Korean crisis of freedom and democracy)’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깅그리츠 전 의장은 해당 기고에서 최근 국내에서 진행 중인 3대 특검(내란특검·김건희특검·순직해병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벌인 보수 인사와 종교 지도자 그리고 교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정치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 숨 막힐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내란특검이 미국 측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오산 공군기지에서 벌인 압수수색을 벌였다며, 이재명 정부를 향해 “매우 오만했다(The Lee administration has been so arrogant)”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대화 또는 조율도 없이 미국과의 공동 기지를 습격하는 오만함으로 인해 루비오 장관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예정된 회담을 취소하고, 한미 무역협상단 간의 회담도 취소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멘토이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깅그리츠 전 의장은 미 공화당의 원로이자 정가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로 꼽힌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인사에 비유한다면 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도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런 그의 글을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백악관 내 주요 인사들이 주목하는 건 당연하며, 가짜뉴스를 끄적거릴 수준의 인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 측은 현재 국내 특검의 무리한 수사, 특히 교회와 군 기지까지 들이닥치는 강압적 압수수색이 장관급 인사와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결례를 범할 정도로 불편한 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깅그리치 전 의장은 기고에서 지난 25일 한미정상회담 개최 불과 3시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SNS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한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마치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 그리고 이후 기자들에 한국 내에서 최근 일어난 특검의 교회와 오산 공군기지 압수수색을 꼭 집어 “잔혹한 급습이며, 심지어 우리 군 기지까지 들어가 정보를 빼돌렸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을 언급했다.
이는 곧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한국 내 특검 수사에 대한 심각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근거라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앞선 언행이 처음에는 황당할 정도로 이해 가지 않았다. 회담을 불과 3시간 앞두고 판을 깨자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발언을 SNS에 올리고, 기자들 앞에서 한국 내에서 이뤄지는 수사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게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SNS에 올린 대로 “한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라는 게 궁금했다면, 우리 정부 측에 먼저 조용히 사실확인을 요청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깅그리치 전 의장의 기고처럼 국내 특검의 교회와 군 기지 압수수색에 대한 미 정부의 불편한 인식을 명분으로 우리 정부 측을 협상에서 강하게 압박하려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와 군 기지 압수수색 등을 이유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초조한 심리마저 이용하는 게 더 유리한 협상 고지에 오르기 위한 전략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주도한 3대 특검의 무리한 수사가 트럼프 대통령에 굴욕적 관세협상의 결과를 내주는 원인을 제공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중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의 압수수색에 관한 자신의 앞선 언행에 대해 “오해였다”고 말한 것에 아마 안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깅그리치 전 의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앞으로 몇 주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전체주의적 경찰국가 전술에서 벗어나 법치주의로 회귀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검을 통해 전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9월 정기국회에서 여당은 3대 특검에 대한 수사 기간을 연장하려는 모양새다.
혹시라도 트럼프의 “오해였다”는 말에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발 뻗고 잘지도 모르는 이재명 대통령에 한 가지를 꼭 알려주고 싶다.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합의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