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대학 생활이 한창이던 2013년 말, 정치 뉴스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박근혜 정부 초기인 만큼 거의 모든 정치 뉴스가 대통령실이나 여당인 새누리당 뉴스로 도배됐다.
그 와중에도 야당인 민주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에 관한 뉴스가 필자의 눈에 띄었는데, 바로 3선의 조경태 (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당시 조경태 의원은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자숙은커녕 대선 재도전 발언을 하는 등 성급한 정치 행보를 보인 같은 당의 문재인 의원을 연일 비판했다.
특히 이때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미이관 사태에 대해 문재인 의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발언을 꼬집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부끄럽고 뻔뻔하며 무책임하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언론에서는 조경태 의원을 당내 친노 강경파에 맞서는 ‘소신파’로 조명했고, 특히 한 보수언론에서는 ‘민주당의 마지막 인물 조경태’라고 띄워주기도 했다.
반면 당시 민주당 내 강경파들은 조 의원을 일제 맹비난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정청래 의원(현 민주당 대표)이 트위터 계정(@ssaribi) 등에 조 의원을 강하게 저격한 것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어 당시 발언을 찾아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경태 의원에게> 관심받기 위해 말질하고 말 안 듣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도, 민주당에서 새누리당처럼 언행해야 튄다는 계산도 측은지심으로 이해하겠다. 보수언론이 띄워주니 장삿속으로는 이문이겠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더 이상 내무반에 총질하지 마라.”
“<조경태 의원에게-2> 착각하지 마라. 당신은 모두가 Yes할 때 No라고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알량한 존재감 과시를 위해 음주운전에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 객기부리는 취객일 뿐이다. 내게 할 말 있으면 술 깨고 와라.”
“<조경태 의원에게-3> 문재인 공격하듯 박근혜를 비판해 본 적 있는가? 민주당에게 쓴소리하듯 새누리당 정권의 불법 대선, 부정 선거에 당차게 대항한 적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당신은 비겁하고 야비한 정신적 새누리당원이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고 가라.”
그렇게 조경태 의원은 민주당 강경파의 거센 공격에 이은 ‘배신자’ 낙인을 수년간 견디며 2016년 탈당, 그해 새누리당에 입당해 이후 보수당 소속으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사실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에게는 조경태 의원의 정치 행보가 그다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의원, 특히 민주주의라면 목숨 걸고 지킨다는 민주당에서 소신 발언은 누구나 할 수는 있고, 이걸 비난하는 강경파 의원들에 명백히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조 의원도 자신의 소신이 당내 다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민주당에 적을 둔 채 그 다수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것 역시 공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목소리도 보장해야 하지만 엄연히 다수결 원칙이 우선이며, 당 내부에서 자신의 소신이 다수를 설득하지 못했음에도 당에 남아 사사건건 대립한다면 정청래 의원의 말처럼 내부 총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 소신을 펼치려 했다면 그리고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최소한의 도의를 지키고자 했다면, 민주당을 신속히 탈당해 무소속 또는 신당에서 자신의 당당한 정치를 펼쳐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다음 행보는 민주당의 상대방이자 이 정당 지지자들이 적으로 생각하는 보수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그에게 어떤 소신도 도의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후 보수당에서 3선을 하는 동안 조 의원은 필자에게 소신도 특색도 부족하며 당내 장악력도 보이지 못하는 ‘그저 지역구 관리만 잘하는 의원’에 불과했고, 필자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런데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을 전후로 다시 눈에 들어왔다. 마치 2013년 말 민주당 소속으로 내부 비판에 나서며 당내 인사들과 싸우는 그때의 조경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7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비상계엄은 잘 못 됐지만, 탄핵에 반대한다”고 밝히더니, 직후 “한동훈 당 대표의 뜻을 따르기로 정했다”며 다시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그분 이야기는 하기도 싫다. 앞으로 윤석열 씨라고 부르겠다”며 맹비난을 서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 내부 인사에 대한 공격적 발언 그리고 당내 다수의 의견과 배치되는 행보를 이어갔다.
물론 백번 양보해 탄핵과 윤석열 전 대통령 그리고 당내 소위 ‘윤핵관’으로 불렸던 이들에 반대하는 걸 적어도 소신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힘 다수가 반대하는 3대 특검법을 찬성하는가 하면, 특검의 국민의힘 당원 명부 압수수색에 협조하자는 취지로 주장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좌익 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극우 세력’과 ‘내란 정당’ 프레임에 몰두하더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저지하려 한 당내 45명의 현역 의원을 출당 및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조 의원이 이러한 행보는 국민의힘에 반(反)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흐뭇하게 만드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들에게 “보라, 보수당 6선 의원도 우리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할 명분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조경태 의원은 당 대표 경선에서 탈락했다. 결선에 오르지도 못했고,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이루지도 못했으며, 경선 과정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당내 유력 인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6선이나 한 국회의원이 맞는지, 과연 어떻게 정치를 해왔길래 이렇게 당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인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그가 마이크만 잡으면 곳곳에서 “배신자”를 외치며 심한 욕설이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을 듣자 하니 이재명 정부와 여당과의 투쟁보다 윤 전 대통령과 내란, 당 내부 비판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수를 설득하지 못해 당 대표 경선에서 떨어졌음에도, 현재는 “앞으로 있을 레밍 신드롬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장 대표를 선택한 당원들을 레밍이라고 깎아내렸고, “국민의힘은 내란 당의 오명을 벗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저주에 가까운 말을 언론에 퍼부었다.
정청래 당 대표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앞서 소개한 그의 조경태 의원을 향한 과거 발언이 새삼 ‘선견지명’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의 다수가 매우 공감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더 이상 내무반에 총질하지 마라.”
“착각하지 마라. 당신은 모두가 Yes할 때 No라고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알량한 존재감 과시를 위해 음주운전에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 객기부리는 취객일 뿐이다.”
“문재인 공격하듯 박근혜를 비판해 본 적 있는가? 민주당에게 쓴소리하듯 새누리당 정권의 불법 대선, 부정 선거에 당차게 대항한 적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당신은 비겁하고 야비한 정신적 새누리당원이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고 가라.”
조경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13일 오후 대전 서구 배재대학교에서 열린 국민의힘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데일리
필자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6차 전당대회 오프닝 때 4명의 당 대표 후보들이 당원들 사이를 통과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지지자들과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혼자 먼저 앞으로 나아가는 조경태 의원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도 조 의원에 먼저 악수를 청하지 않았고, 조 의원도 그저 손만 흔든 채 악수를 내밀지 않았다. 그게 현재 국민의힘 내 조 의원이 처한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30대로서 소신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다수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건 소신이 아닌 아집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루빨리 국민의힘을 떠나는 게 그나마 다수를 위한 그리고 최소한의 소신을 지키는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