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한민철 기자 ㅣ LG화학의 전기차용 배터리 관련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SK 임직원들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다소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국가산업기술 유출 관련 사건이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등 최근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는 추세임에도, 4년 전 두 회사 간 이뤄진 2조 원대 합의가 이들의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의 배터리 관련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SK 임직원들이 법원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으며 엄벌을 피했다. 사진=뉴데일리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대전지방법원 형사단독 9부는 영업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받는 SK온 장 아무개 부사장 등 7명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7년경 SK이노베이션의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LG화학 직원이 이 회사에 이직하면서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하는 리튬 2차 전지 기술 관련 기밀자료를 빼돌리면서 비롯됐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이직한 직원들로부터 해당 기밀자료를 받아 내부에 공유하고 이를 사용했다며 관련자들을 지난 2019년 5월 경찰에 고발했다.

특히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합의금만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SK이노베이션 본사와 서산공장 등을 대상으로 수차례 압수수색을 실시해 기술 유출 혐의를 확인했고, 지난 2022년 3월 SK이노베이션 법인과 임직원 30여 명을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LG화학의 영업비밀 정보에 대한 누설 및 취득, 사용 등의 사실이 인정된다며 장 부사장 등 SK온 직원 7명을 재판에 넘겼다. 다만 기존 수사대상 가운데 17명을 기소유예하는 등 29명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국내를 대표하는 배터리 생산 업체 간의 벌어진 역대급 기술 유출 건으로도 알려졌다.

그동안 국가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관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는 물론이고,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커져갔다. 특히 사법부도 관련 사건에 대해 과거보다 엄하게 양형을 정해 처벌하고 있는데, 지난 7월에도 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영업비밀을 외부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전 직원에 징역 3년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

(왼쪽부터) 구광모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사진=뉴데일리, LG


산업기술보호법 36조는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당시 SK이노베이션 측에 넘어 간 LG화학의 기밀도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전원에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이처럼 다소 가벼운 형량이 내려진 배경에 대해 재판부는 지난 2021년 5월 SK가 LG화학 및 LG에너지솔루션과 체결한 미 ITC 최종 결정에 따른 합의 내용을 양형에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ITC는 최종적으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미국과 우리 정부의 중재로 SK 측이 LG에 2조 원의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하면서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 됐다.

당시 두 회사의 합의 내용 중에는 ▲국내외 모든 분쟁의 상호 취하 ▲현재 소송 중인 특허 및 영업비밀 관련한 모든 책임 면제 및 영구적인 라이선스 등이 있었다.

재판부는 장 부사장 등 7명의 피고인이 ‘현재 소송 중인 특허 및 영업비밀 관련한 모든 책임 면제’ 대상에 포함하는 만큼,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