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발생한 우리 근로자들에 대한 체포·구금 사건이 벌써 일주일이 돼가고 있지만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미 이민당국이 체포한 우리 근로자의 수가 무려 300여 명에 달한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여태까지 조지아주 남부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 갇힌 채 온전히 귀국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 정도로 많은 우리 국민이 미국에서 한꺼번에 ICE에 체포된 적은 없었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배경에 단순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더 엄격한 이민 단속 정책만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번 단속에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그 대상이 다른 곳도 아닌 현대차라는 점이었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정의선 회장이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향후 미국에 4년간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현대차의 현지 공장 내 불법체류 등이 진정으로 문제가 됐다면, 대대적 단속에 나가기 전 근로자들에 대한 자진 귀국을 촉구하거나 단속 일정을 예고라도 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배려는 없었다. 현지 백악관 출입 기자들도 이 부분이 의아했는지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 “한국 측에서 이미 반발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얼마 전 약속하지 않았는가”라며 이번 단속의 진짜 배경을 캐물으려 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들이었고, ICE가 자기 할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어진 말에 진짜 속내를 밝혔다고 느껴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제가 알기로 그곳에는 불법 체류자가 많았고 일부는 범법 성향의 사람들도 있었다”라며 “당국은 그들의 일을 한 것으로, 그들의 임무다. 그 사람들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내 근로자들에 대해 단순한 불법체류에 더해 또 다른 범죄혐의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의 발표에 의하면, 이들을 단속하기 위해 ICE와 HSI 인력은 물론이고, 경찰과 주 방위군에 ERO(단속추방팀), FBI(연방수사국), DEA(마약 단속국), ATF(주류·담배·총포 담당국), CBP(세관 및 국경 순찰대), 보안관, 주 순찰대까지 수천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어느 정도 범죄혐의에 확신을 갖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FBI와 DEA의 투입은 마약 연루와 그 밖의 중대 범죄까지 포착했다는 걸 의미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체포·구금된 우리 근로자 중 마약에 연루된 자가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필자는 FBI 등이 확인하려 한 범죄 사실에 대해 지난 7월 말 뉴욕 타임스퀘어 등에서 열린 민주노총 및 좌파 인사들의 반미 집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달해 정부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긴장 상태였고, 적어도 협상의 키를 가진 미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들은 7월 25일~27일까지 ‘피플스 서밋 포 코리아(People’s Summit for Korea)’라는 행사에 참여했고, 27일 뉴욕 타임스퀘어 집회에서 함재규 민노총 부위원장은 “을사늑약은 미국이 시작한 치욕과 비극” “미국은 한반도를 해방시킨 나라인가. 한국은 진정으로 해방됐는가” “동북아 평화는 미국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용병국가가 아니다. 한반도를 비롯한 모든 곳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함재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부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현지시각)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날 행사에 참석한 또 다른 한국 국적의 좌파 인사들도 살벌한 수준의 반미 주장을 서슴지 않았고, 특히 미 정부가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하마스와 필리핀 반군을 지지하는 인사들도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당연히 미국 정부 입장에서 이들은 단순한 사회운동가 또는 민중운동가가 아닌,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그리고 심하면 자국민에 대한 테러 행위까지 범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인식했을 수밖에 없다.
이에 FBI 등을 통해 이들 민노총 참석자들이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근로자에 포함돼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투입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이번에 체포된 근로자 중 LG에너지솔루션의 파견업체 소속 중국인 인력이 8~9명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는 데 이들이 과연 단순 근로자인지 아니면 중국 산업 스파이 등의 위험성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차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미 정부가 동맹국인 한국의 대기업 현지 사업장에 벌인 역대급 단속의 진짜 의도라고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미 정부를 비난하며 미국인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미 이민당국은 관련 법에 따라 정당한 집행에 나섰을 뿐이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 근로자들은 단기상용 비자인 B-1(비즈니스 출장·회의 참석)이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아 입국했음에도 급여를 받고 사업장에서 근무한 게 문제의 계기가 됐다.
미국 내에서 급여를 받고 일하기 위한 체류 목적의 비자인 E-1과 E-2 등의 발급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B-1과 ESTA를 통한 입국과 근로가 현지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과거부터 관행처럼 이뤄졌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 정부보다 이민법을 더 엄격하게 보겠다고 예고한 만큼, 아무리 이러한 식의 관행이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 정부가 이를 진작에 바로 잡아야 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이런 문제를 미리 인지하고 올해 초부터 비자 발급과 입국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우리 정부에 꾸준히 알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 4월 미국 비자 발급에 애로 사항이 있다는 취지로 민원을 접수했고, 이에 외교부는 비자 재발급 지원 등의 조치에 나섰다고 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 5월 30일 미국 비자 문제와 이와 관련해 입국이 거부되는 사례 등에 관한 애로 사항을 외교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 당국이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결국 우리 근로자의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로 이어졌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 모두를 화가 나게 만드는 건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의 값진 성과’라고 자찬하는 이번 한미협상의 결과다.
이재명 정부는 3500억 달러(약 485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미국에 퍼준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자동차 관세는 25%로 유지되고 있고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다. 어떤 좌파 인사는 방송에 나와 “덜 뜯긴 게 얻어낸 것”이라는 정신승리 수준의 발언을 쏟아냈다.
진정 이번 협상에서 이재명 정부가 뭔가를 얻어냈다고 자평하려면 적어도 우리 기업들이 수개월 전부터 민원을 제기한 비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았는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핫라인을 구축했다고 떠들어 댄 강훈식 비서실장은 대체 뭘 했는가. 이런 일을 미리 해결하라고 핫라인을 뚫은 게 아닌가. 심지어 이번 일이 터진 직후에도 핫라인이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번에 체포·구금된 우리 근로자 300여 명이 ‘자진출국’하는 것으로 미국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밝혔다.
말은 바로 하자. 미국의 이민 단속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이들 300여 명의 근로자들에 대해 “구금된 한국인 대부분은 퇴거 명령을 무시한 혐의로 구금된 것으로, 추방(deport)될 것”이라며 “소수는 다른 범죄 활동에 가담했고 그에 따른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진출국이 아닌 명확히 ‘추방(deport)’이라는 단어를 썼다. 강제 추방으로 향후 수년간 이들의 미국 입국이 불허될 것이며, 심지어 가족들의 입국조차 까다롭게 심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비자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다 빼앗기고 온 주제에 실용외교 운운한 이재명 정부의 실책이 우리 국민들에 직접적 피해로 이어진 이번 참사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애당초 반미나 외치던 자들이 국회와 정부 곳곳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니 이런 사단은 결국 시간의 문제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까지도 이들에게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어떠한 제대로 된 혜안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 당신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다. “자신 없으면 정권 반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