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교수 ㅣ 최근 배우 윤여정 씨 아들이 커밍아웃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제와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고민 사이에 놓여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윤여정 씨는 특유의 쿨함으로 아들의 선택을 받아들였지만, 이 사안을 단순한 ‘쿨함’이나 ‘진보성’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나 역시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직접 경험했다. 특히 미국 유학 시절, 한 레즈비언 교수는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너희 중에 페미니스트인 사람 손들어봐”라고 요구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다양성과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흐름이 한창이었지만, 동시에 특정 방향성(예컨대 트랜스젠더나 양성애를 탐구하고 수용하는 것) 만이 ‘더 진보적’이라고 주입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실제로 게이나 레즈비언들 중에는 본래의 성향과 무관하게 학습되고 유행처럼 받아들여진 경우도 목격했다.
최근 PC주의 흐름은 감정적 인식의 상이함마저 죄악시하는 전체주의적 속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에 극단적으로 반발하는 이대남 세대 등 특정 집단을 낙인찍고 갈등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샤이 노말 현상, 즉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지만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다수의 침묵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문제를 외면하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PC주의는 진정한 갈등 해결 기능을 제거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 현장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섭스탠스’를 보자. 이 작품은 여성의 과도한 미 집착을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의 압박 탓으로 돌리며, 남성 사회를 악으로 묘사하는 서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걸그룹 서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두드러진다. 뉴진스 사태를 보면, 하이브와의 분쟁 속에서 방시혁은 ‘개저씨’로 악마화되고, 민희진은 페미니스트 전사처럼 서사화된다. 심지어 팬덤에게도 엄마, 모성애, 가족서사를 결집의 구심점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갈라치기가 강화된다.
뮤직비디오와 음악 콘텐츠에서도 남성은 주로 배신하거나 상처를 주는 존재로 묘사된다. 제니의 ‘Like Jennie’ 같은 곡은 “Girls can do anything”과 같은 서사로 여성 연대를 강조한다.
반면, 정통적 이성애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고,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 즉 일부러 성소수자 코드를 암시해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이 오히려 ‘진보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커밍아웃은 기득권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행위처럼 포장되고, 이성애적 전통은 구시대적이며 억압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소수자 존중을 넘어, 정통적 가치를 옹호하거나 지키려는 시도마저 억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지만, 오히려 공공장소에서의 과도한 표현을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갈등을 예방하고 있다. 다양성은 인정하되 절제와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동성애를 죄악시하거나 차별하는 것도 금지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권리 강요나 동성 결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기존 법과 사회 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것이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 전 총리의 손자가 영국에서 동성애 커밍아웃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가 미국 사회에서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미국 사회는 상당히 양극화되고 분절화되어 있다. ‘멜팅팟’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집단(흑인, 백인, 라틴계 등 )이 각자의 행동 양식과 문화를 더욱 배타적으로 고집하며 서로 분리되어 살아간다.
학생들에게 “너희는 인종차별주의자냐”고 물으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문화나 인종이 특정한 행동 패턴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가 그렇다고 답한다. 이는 인간이 인식의 영역에서 이미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 해결은 이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와 다른 감정, 인식, 경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시하고 절제하며, 이성적으로 합의를 모색하는 데 답이 있다.
예컨대, 내가 흑인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감정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제도적 차별이나 구체적 손해를 입히지 않도록 이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감정과 이성의 분리 작업, 그리고 역할 분담, 이것이야말로 다양한 갈등을 풀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합리적 방식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전략기획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