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미국 역사의 진일보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이미 그가 사망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어느 설문조사에서도 링컨은 현대 미국인에 가장 능력있고 존경받아 마땅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명성에는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의 승리 등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비록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중퇴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미국 대통령으로 올라선 인생역전 스토리 역시 미국 국민들이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링컨에게는 한 가지 극과 극의 설문 결과가 따라다니는데, 바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영부인’이다.
링컨의 배우자이자 영부인인 메리 토드 링컨은 남편의 대통령 재직 당시 사치와 국고 낭비, 갑질 등의 패악으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영부인으로 불리는 것은 물론이고, 각 대통령 취임 시 영부인에 ‘금기 사항’으로 그의 사례를 들어 교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그런데 메리 토드 링컨은 남편과는 다르게 켄터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은행가인 아버지 밑에서 매우 유복하게 자랐으며,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고등 교육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런 링컨 가(家)의 역사는 미국 국민들에게 대통령, 특히 영부인의 자격은 결코 학벌과 재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아무리 학벌과 집안 배경이 좋아도 최악의 영부인으로 길이 남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최근 21대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한창인 우리나라에서 마치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며, 논란을 자초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작가이자 좌파 정치인들의 최고 셀럽인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지난달 28일, 방송인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를 겨냥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김문수 씨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다. 그 설난영 씨는 생각하기에는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온 것이다.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 씨의 인생에서는 거기 갈 수 없는 자리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죠. 한마디로.”
유시민의 해당 발언은 여성을 폄훼하는 동시에 노동자 그리고 학력 비하 발언으로 번졌다. 이는 누구에게도 고졸(실제 성심여자대학교 졸업)이자 노동자 출신인 설 여사가 영부인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인 김문수 후보와 비교해, 설 여사의 배경이 매우 부족해 “균형이 안 맞는다”라거나 “당신 인생에서 갈 수 없는 자리”라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유시민의 문제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고,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좌파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비뚤어진 계급주의적 사고관과 봉건적 여성관을 여과없이 드러낸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은 논란이 커지자 같은 날 노무현재단 유튜브에 출연해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운을 띄우며 설 여사에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는 “설난영 씨가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김문수 후보와 혼인했을 때, 본인이 ‘고양됐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한 것”이라며 “제가 계급주의적, 여성비하적 발언을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런 취지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잘못은 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이 결코 비하의 의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사과랍시고 굳이 나와 해명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침묵을 지켰더라면 덜 뻔뻔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발언에 설 여사를 향한 성별과 학벌, 직업 비하로 받아들였다고 외치고 있음에도, 자신은 아니라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는 사과가 아니라, “내 말을 왜 너희들은 못 알아먹고 있는가”라는 식으로 느껴질 뿐이다.
과거 필자가 정치에 입문했을 때, 같은 당 선배 정치인 중에는 학벌과 배경이 대단한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은 고졸 출신이었고, 영부인은 고등학교 중퇴의 학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학벌을 두고 비하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스펙의 선배 정치인 누구도 사석에서조차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오로지 ‘고졸 출신이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중졸이라도 영부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이자, 민심의 결과 그리고 이 사람들의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필자는 유시민의 논란의 발언을 접하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겉으로는 그렇게 노무현을 존경해 마지 못한다는 사람이, 속으로 학벌과 직업 차별 의식을 가진 채 노 대통령과 권 여사를 얼마나 깔봤을까’라는 것이다.
유시민의 말대로라면 초등학교 중퇴에도 변호사에 미국 대통령까지 된 링컨조차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온 동시에 발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사람인 만큼, 노 대통령과 권 여사에 대한 속 마음은 오죽했을까 말이다.
특히 설난영 여사는 유시민이 절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김문수 후보가 1986년 유시민의 동생 유시주 씨와 함께 체포당하면서, 설 여사가 누나인 유시춘 씨와 함께 단체까지 만들어 모두의 석방 운동을 벌이지 않았는가. 그 과정에서 숱한 탄압을 받고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했다고 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인권 보장과 민주적 노동 현장을 만들기 위해 젊음을 바친 ‘찐민주화운동가’이자, 구속된 자신의 가족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사람을 어떻게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폄하하는 가.
유시민 자신이 말 한대로 60세가 넘으니 뇌가 썩어서 이런 험한 말이 실없이 나온 것인가. 사과랍시고 나와서 해명한 말을 보니 실없이 나온 말은 아닌 듯하며,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고 인정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좌파는 말을 믿지 말고, 행동을 믿어라”라고 자주 말한다. 좌파들은 말로는 부의 평등을 외치지만 누구보다 부를 탐하고, 학벌주의 타파를 외치지만 자신들은 명문대 출신에 자녀들은 외국의 유명 대학에 유학을 보냈다. 부동산을 부의 증식을 목적으로 가지지 말라면서, 까보면 자신들은 이미 엄청난 부동산 부자들이다.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유시민조차 과거 “땅을 사고팔아 부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으면서, 자신의 방배동 집은 13억 7000만 원에 사서 4년 만에 27억 원까지 올라 논란이 되지 않았는가.
이런 말과 행동이 극과 극이고, 뼛속 깊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듯 보이는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 하늘에 있는 링컨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