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발행인 강용석 ㅣ 미국에게 2차 세계대전은 자국의 아들들을 약 40만 명이나 잃게 한 역사적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들어준 기회이기도 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전후 80년이 넘도록 자국의 성장을 이끈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 참전 용사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우리나라 돈으로 연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었고, 이들의 유족에게는 DIC(Dependency and Indemnity Compensation)라는 연금 형식의 보상금을 지급해 왔다.
DIC는 참전 용사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 등 직계 가족을 대상으로 지급해왔는데,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대대손손 물려주지는 않는다.
어느 미국인도, 심지어는 DIC 수급자들조차 참전 용사의 손자녀와 증손자녀에게까지 이를 계속해 지급하길 원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DIC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돈이 아니라, 엄연히 국가 세금으로 조성하기 때문이다.
참전 용사가 자랑스럽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부재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을 받으며 위로와 자금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그와 자녀와 배우자 그리고 부모에 한정될 뿐이다.
아마 참전 용사의 사망 당시 태어나지도 않아 얼굴과 이름조차 모를 법한 손자녀와 증손자녀가 각각 할아버지이자 증조할아버지의 부재로 위로를 받아야 하거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상식적인 판단만 가능한 사람이라면, 이는 넌센스에 가깝다고 누구나 말할 것이다.
충격적이지만 그런 일이 2025년 6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전라북도가 내년부터 도내에 거주하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매월 1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수당 지급 대상은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자녀와 손자녀, 증손자녀 등 직계 후손 가운데 전라북도에 거주하는 유족이라고 한다.
전라북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해당 유족은 총 915명이며, 가구당 1인 지급 기준으로 실수혜자는 429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에게 지급할 돈의 연간 규모인데, 무려 10억 98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후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사례가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읍시가 지난 2020년부터 지역 내 동학농민혁명 유족, 역시나 자녀와 손자녀, 증손자녀를 대상으로 월 1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해왔다고 한다. 이달 현재에도 90명이 해당 수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1900년대도 아니고, 심지어 경술국치보다 무려 16년 앞서 일어난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1920년대생들이 현재 100세를 넘긴 것을 보면, 당시 운동 참여자의 자녀들조차 현재 생존해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솔직히 말해보자. 당신은 지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성함과 생년월일을 바로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얼굴이라도 바로 기억해낼 수 있는가, 그분들과의 남은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는가.
다시 한번 솔직히 말해보자.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부재가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이끌었다거나 금전적 위로가 필요할 정도의 비극인가.
아무리 동학농민운동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할지라도, 운동 참여자들의 희생이 대체 손자녀와 심지어 증손자녀에게까지 금전적 보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것도 자발적으로 모인 기금도 아니고, 세금을 투입해서 말이다.
또 동학농민운동 당시 우금치전투에서의 사망자가 약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많은 사람의 유족을 어떻게 정확히 추려낸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전라북도가 재정자립도가 좋은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전라북도의 재정자립도는 23.5%로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최하위다. 전남이 24.4%로 바로 앞에 있으며, 전국 재정자립도 평균(43.2%)보다 무려 20%p나 낮은 수준이다.
동학농민운동 유족에게 연간 10억 9800만 원을 지방세로 투입하다가 향후 재정자립도가 더 줄어들어 예산이 부족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시행한 조례라 갑자기 주지 않으면 지역민들 반발이 우려될 수밖에 없고, 결국 중앙 정부로부터 예산을 끌어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려 100년도 훌쩍 지난 일의 당사자의 손자녀와 증손자녀에 매달 10만 원씩을 지급해야 하니 세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국민들이 과연 몇이나 된다고 보는가.
동학농민운동이 반봉건, 반외세, 반부패 운동의 상징으로 이후 여러 민족 운동에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홍경래의 난, 임술농민봉기 등도 저마다 대단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이 사건의 유족들도 매달 10만 원씩 지원해야 공평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