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차명진 전 국회의원


내가 설난영 여사를 처음 본 건 구로공단에서 노동 운동하다가 해고됐을 때다.

40년 전 일이다. 해고자 모임에 격려차 방문을 왔다.
작은 체구에 단호한 어투였다.

남편이 보안대에서 고문받은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 않고 하는데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김사부’를 만나기 위해 서점이나 댁에 들렀을 때 설 여사를 봤다.
그때도 숨이 막혔다.
남편이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다.

돈은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면서 주변 후배들한테는 물 쓰듯 한다.
설 여사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불안한 표정, 싫은 내색 한 번 안 했다.
딸을 키우면서도 여성노동자회 일, 탁아소 일로 정신없고 짜증도 날 텐데 항상 안온한 표정이었다.

김사부가 처음 정치할 때였다.
설 여사는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과거 운동권 시절에 그렇게 당당하던 분이 저렇게 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굽신굽신하는 모습이라니!

김문수의 성공 신화는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다.
내가 김사부한테는 가끔 대드는데 설 여사한테는 함부로 말도 못 붙인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에 눌린다.

우리가 운동권 시절,
김문수가 레닌이라면 설 여사는 크루습카야 같은 존재였다.
크루습카야는 레닌의 부인이자 혁명동지였다.
세진전자 노조위원장 출신 설 여사는 운동권 여성의 로망이었다.

설 여사가 김문수 후보와 결혼해서 신분 이동했다는 해석은 세상을 신분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렇게 결혼했을 거다.
무엇보다 유시민은 김문수와 설난영 사이에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동지적 관계를 못 보고 있다.

설난영의 헌신과 솔선수범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김문수는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외로운 풍운아 정도?

마지막으로 세간에 잘 못 알려진 사실 하나를 바로 잡고자 한다.
유시민은 서노련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예비 멤버 정도였다.

그러다가 동구가 무너지고 부모 찬스를 이용해 독일에 유학 갔다 와서 글재주를 이용해 외국책 몇 권 짜깁기해서 대중성을 얻었다.

그의 책이 남의 글 짜깁기라는 것은 책 좀 읽어 본 사람은 다 안다.
그는 ‘찐운동권’은 못되고 그냥 가문을 잘 타고난 운동권 귀족이 맞다.

그가 운동권 주변에 있었던 적은 여동생 뒷바라지할 때가 전부였다.

□ 차명진 전 국회의원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 학사
- 서울대학원 정치학 석사
- 김문수(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국회의원 보좌관
- 17·18대 국회의원 (부천시 병)
- 유튜브 <차명진TV(구독자 약 17만 2000명)>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