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교수 ㅣ 나는 스페인에 살면서, 다른 서방세계 어느 나라들보다도 이질감 없이 편안함을 느낀다.

심규진 교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비슷한 코드가 많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스페인을 한때 세계를 재패했던 강국 중 하나로 알고 있지만, 사실 스페인은 ‘상속’을 통해 거대한 영토와 부를 물려받은, 일종의 강남 웰빙 귀족층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관료주의적 귀족들이 다스린 나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슬람의 지배로부터 카톨릭을 지켜낸 나라라는 게 국가적 정체성이다.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 ‘no to everything’,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문화 보수적 반동 문화가 팽배하다.

그래서 이들은 침략전쟁에 참여해 그닥 이득을 보지 못했다. 즉, 결혼 동맹을 통해 하루아침에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은 카를 1세의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영토를 조금씩 침략자들에게 빼앗기며 살아왔다. 패권전쟁에 개입해 영토를 확장하거나 전선을 넓혀본 적이 거의 없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끈 펠리페 2세는 대표적인 ‘관리자형’ 군주였다. 이병철이나 이건희 같은 창업자형 리더가 아니라, 이재용처럼 유산을 물려받아 조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스타일의 지도자였다.

이러한 국가 성격 때문에 스페인은 관료주의가 매우 발달했고, 사람을 잘 믿지 않으며 ’자기들끼리만 헤쳐 먹는’ 근친 논리도 다른 유럽 왕국들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나라다. 카톨릭 공동체 문화 또한, 한국의 단일민족 국가 정서나 유교 사상 문화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이 프랑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복합적 감정이다. 이 나라는 과거 나폴레옹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스페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한국 지식인들이 한때 일본이나 미국을 선망했던 것처럼, 프랑스의 발달된 계몽주의나 좌파 사상에 대한 동경이 존재했다.

내가 읽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자신의 비루한 삶을 깨닫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생활인으로서 안정과 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식은 이 갑갑한 카톨릭적 분위기 속의 스페인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며, 리버럴한 프랑스로 유학을 보낸다.

한마디로 말해,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남 좌파적 지적 허세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어느 나라든 자녀 교육을 최고급으로 시키고자 한다면 프랑스 학교를 보내는 것이 하나의 ‘패션’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이 아나키스트의 고백 속 주인공도, 한국으로 치면 말로는 진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식은 미국 유학 보내고, 일본 문화나 만화에 열광하는 그런 이중성을 보이는 인물과 똑같다.

내가 전 세계를 다녀보며 느낀 건, 인간은 어디나 똑같다는 것이다. 말로는 진보적인 척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지만, 결국 권력 앞에 약하고 몽둥이 앞에 순응하며, 자신의 이익에 매우 민감하고, 상황에 따라 태세 전환을 잘한다.

사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서 묘사되는 것도 좌파 진영의 허위와 모순이지, 이 인물이 프랑코 정권에서 진짜로 강한 탄압이나 실질적 불이익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좌파 문화 권력에 의해 우파의 정치적 정통성을 훼손하고, 우파 영웅들을 악마화하는 선전·선동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전략기획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